달리기를 시작하고 첫 대회(2009 아디다스-MBC 한강마라톤, 10k)를 나갔을때, 출발에 대한 설레임과 흥분속에 사람들의 신발 구경 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그중에서도 아무것도 모르는 초짜에게 가장 강력한 인상을 준건 아식스 마라톤 신발이었다. 뭐랄까, 풀코스를 달리는 고수만 신을 수 있는, 저 높은 곳, 손 닿을 수 없는 경지에 이르러야만 갖을 수 있는 그런 강력한 위엄이 있었다. 언젠가는 '아식스 마라톤화를 신고 풀코스를 달리겠노라' 막연한 동경이 그때부터 시작되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달리기 실력도 아주 조금씩 늘었다. 그러다 어느새 풀코스를 몇번이나 완주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드디어 때가 왔다. 나도 이제 아식스를 신고 42.195km를 달려 볼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하여 이번 2016 서울국제마라톤(동아마라톤)에서 아식스 스카이센서 재팬을 신었다. 신발만큼은 마치 고수가 된듯한 기분이 들었던 그런 나에겐 역사적인 날이었다.
아식스 스카이센서 재팬은 일본에서 생산되는 제품이다. 신발명 뒤에 재팬JAPAN이 붙으면 일본에서 제작된다는 뜻이다. 국내 판매가는 약 20만원정도로 알고 있다. 상당히 고가의 신발임은 분명하다. 디자인의 경우 많이 바뀌지 않는, 조금은 보수적인 모델이다. 자매품인 타사 재팬도 색상만 바뀌고 디자인은 크게 바뀌지 않는 것으로 알고 있다. 오랜기간 변치 않는 모습이 장인의 이미지를 주는 것 같다. 특히 새하얀 신발에서 주는 고수의 향기가 나는 것 같다.
신발의 어퍼는 상당히 부드럽다. 얇은 소재로 통풍도 아주 잘된다. 바람이 불면 발가락으로 어디서 불어오는지 느껴질 정도로 시원하다. 매쉬는 생각보다 잘 늘어난다. 신발자체의 발볼은 보통이상의 크기이다. 맨발을 넣어보면 걸리적 거리는 부분이 없다. 마감이나 소재나 가히 특급이다. 역시 비싼값은 하나보다.
중창의 경우 전체에 Speva가 사용되었다. 아식스에서 사용하는 소재로 젤gel과 함께 다수의 러닝화에 쓰이고 있다. 딱딱하지 않으면서 부드러운 중창 덕분에 발구름이 부드럽게 잘된다. 밸런스가 잘 잡힌 느낌이다. 스카이센서는 타사 재팬과 달리 신발 바닥 전체가 평평하게(플랫형) 되어 있다. 타사 재팬은 아치 부분이 살짝 들어가 있다. 이곳에 지지대가 앞발과 뒷축을 연결해 주는데 스카이센서는 전체가 하나의 구조로 되어 있다. 개인적으로 스카이센서 같은 플랫창을 선호한다.
바닥의 경우 돌기가 없는 물결무늬 비슷하게 되어 있다. 레이싱화에서 보이는 바닥 돌기가 하나도 없다. 빨간색과 검정으로 둘러싼 아웃솔은 마모도는 그럭저럭이다. 일반적으로 돌기가 없으면 접지력이 떨어지며 바닥을 차고 나가는 부분에서 떨어진다고 한다. 이점에서 스카이센서는 빠름 대신에 부드러움과 안정성을 중시했다고 볼 수 있다. 속도를 중시하고 빠른 기록을 원하시는 분이면 스카이센서 재팬 보다는 타사 재팬 계열의 신발이 나을 수도 있고 본다. 물론 지극히 내 기준이다.
스카이센서와 재팬과 타사 재팬의 경우를 들어 사이즈에 대한 몇가지 의견을 제시하자면, 개인적으로 한사이즈 줄여서 구매하는 것을 권한다. 러닝화는 275를 계속 신어서(발에 잘맞음) 최초에 타사 재팬 구입시 같은 사이즈로 구입했다. 그런데 이게 컸다. 길이 보다는 발볼이 생각보다 넓었다. 분명히 내가 구매한 모델은 와이드 핏이 아닌데 광폭타이어 수준이었다. 양말을 억지로 두꺼운걸 신어서 발을 신발에 맞추면 열기가 나고 땀이 많이 차서 통풍의 효과가 떨어진다. (즐겨 신는) 얇은 양말을 신으면 안에서 발이 헛돌아 발바닥에 불이 난 것 처럼 뜨겁다. 타사 재팬을 10k 대회에서 두번 착용했는데 두번 다 발바닥 불이 난 것 처럼 뜨겁고 물집이 잡혔다. 신발끈을 꽈 조여도 앞발은 헛돌았다. 제값 주고 산, 몇번 신지 않은 신발을 지인에게 양도했다.
스카이센서는 270으로 샀다. 길이 보다는 발볼에 맞춰서 한사이즈 줄였다. 몇 번의 연습에서도 크게 불편함이 없었다. 그래서 이번 서울국제마라톤에서 과감히 선택했다. 풀코스를 달리는 동안 두 다리는 기존의 경험에 비추어 상대적으로 통증이 거의 없었다. 쿠션감도 끝까지 살아 있었다. 그러나 발바닥에 물집이 좀 크게 잡혔다. 오른쪽 발볼 부분을 타이트하게 맞췄어야 하는데 후반부에 발이 붓는걸 예상해 여유있게 했다가 하프지점 이후부터 물집이 생겼다. 그외에는 아주 편안하게 신었다. 풀코스에서는 만족했다.
풀코스를 달리고 일주일 후, 10k 대회에 나갔다. 스카이센서 재팬이 속도를 올리면 어떻게 반응할까 궁금하기도 했다. 대회 목표는 42분정도로 잡았다. 아직 피로가 풀리지도 않았고 몸상태가 썩 좋지 않아서 4분 10초대로 달리면서 신발과 몸상태를 체크해보기로 했다. 반환점까지는 아주 좋았다. 그러나 7키로가 넘어가면서 두다리가 무거워지고 몇번의 오르막을 만나면서 체력적으로 힘들었다. 컨디션이 좋았던 초반부에서 3분 후반대로 조금 달렸는데 생각보다는 신발이 잘 받쳐주었다. 그러나 발볼이 큰것인지 신발끈을 덜 조인 것인지, 발바닥이 안에서 밀렸다. 타쿠미를 신었을때의 '신발이 딱 발에 붙어서 같이 간다'는 느낌을 그렇게 받지는 못했다. 착지 후 바닥을 차고 나가는 부분에서 약간의 딜레이가 생기는 기분이었다.
아직은 이렇다할 평가를 하기는 이르지만 스카이센서 재팬은 빠른 속도로 기록을 목표로 하는 대회보단 장거리나 지속주(템포런)에 더 어울리는 것 같다. 차기 대회에서 한두번 정도 더 신어보면 좀 더 명확하게 알 수 있을거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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